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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1천 년을 이어온 시간, 그리고 사찰과의 인연

시간의 무대 위에 선 흥주사의 모놀로그(monologue)

2021.05.06(목) 00:04:35 | 나드리 (이메일주소:ouujuu@naver.com
               	ouujuu@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백화산은 태안의 주산(主山)이다. 백색의 암벽으로 이루어진 산등성이에 햇살이 내려앉으면 청룡의 허리에서 빛나는 비늘처럼 눈부시게 다가오는 풍경이 신묘하기만 하다. 산의 높이는 208미터에 불과하지만 수십만 년에 걸쳐 이루어진 각종 기암괴석들의 풍화된 모습에서 시간의 깊이를 가늠하기는 불가능하다.

흥주사 삼성각에서 바라본 풍경
▲ 흥주사 삼성각에서 바라본 풍경

백화산의 능선 속에는 현대를 살아가는 등산객들의 발길로 길이 만들어지기 이전부터 길은 있었고, 까마귀가 울부짖는 산골짜기에는 태초에 물들여진 초록의 색감들이 굽이치고 있다. 초록색 서슬이 빛나는 소나무가 가득한 숲에는 동물과 식물들의 생태계가 질서 있게 어울리고, 그 속에서 생과 사의 구별들이 명멸하고 있다.

흥주사로 가는 길의 풍경
▲ 흥주사로 가는 길의 풍경

백화산 정상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산길을 따라가면 백제 때 흥인조사가 창건하였다는 흥주사(興住寺)가 있다. 흥주사가 갖고 있는 세속적인 주소는 '태안읍 상옥 2리 산 1154번지'이다. 인간들의 편리성을 위해서 만들어진 주소로 흥주사를 찾아갈 수 있지만, 흥주사의 부처는 삼라만상에 존재하는 부처이다. 그래서 부처를 찾으려고 절에 가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이미 부처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흥주사 앞 복을 주는 석상
▲ 흥주사 앞 복을 주는 석상

백화산 천을봉의 중턱에 자리 잡고 있는 흥주사는 '신증동국여지승람' 이나 '여지도서' 등의 문헌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면 오래된 역사를 가진 사찰로 추측되고 있을 뿐이다. 역사의 기록은 문서로만 증명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흥주사의 역사를 증명하는 것은 흥주사 삼층석탑과 수령이 1천 년이 지난 은행나무이다.

1천년의 시간으로 키워 낸 은행나무
▲ 1천년의 시간으로 키워 낸 은행나무

1천 년을 백화산 천을봉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은행나무는 부처의 도를 품고 있는 듯 평화롭고 웅장한 느낌이다. 흥주사에서는 10여 년 전부터 신도와 주민을 초청하여 주민의 안녕과 평안을 기원하는 은행나무 고사제를 지내고 있다. 둘레 8.4m, 높이 22m로 1982년 충청남도 지정 기념물 제156호로 지정된 이곳 은행나무는 한쪽 굵은 가지에 남근 모양의 가지가 돌출해 계속 자라자 이 가지가 자손 번성에 영묘한 효험을 낸다는 믿음을 가진 주민들이 늘고 있다. 몇 년 전 수년째 자식이 없던 아낙네가 기도를 한 뒤 쌍둥이를 얻었다는 이야기가 돌면서 이 은행나무를 찾는 불임 부부의 발길도 이어지고 있다. 이에 사찰 측과 마을 주민들은 이 은행나무가 건강해야 마을이 평안하고 후손이 번창한다고 믿고, 매년 음력 9월 9일 막걸리 3말(60ℓ)을 대접하고 은행나무제와 백일기도제 행사를 갖고 있다.

흥주사 상징물이 되어 마을의 신앙으로 자리잡 은 은행나무 불상
▲ 흥주사 상징물이 되어 마을의 신앙으로 자리잡 은 은행나무 불상

흥주사에는 두 개의 충청남도 지정 문화재와 한 개의 충청남도 지정 기념물이 있다. 충청남도 지정 문화재는 '만세루'와 '흥주사 삼층석탑'이고, 충청남도 지정 기념물은 은행나무이다. 그러나 모두 국보급의 소중한 우리 민족의 문화재임을 느낄 수 있다.

흥주사의 대문과 같은 만세루
▲ 흥주사의 대문과 같은 만세루

만세루는 흥주사 내에 있는 누각형 목조건물이다. 전체 사찰의 배치로 미루어 볼 때 중문 형태의 배치를 보이고 있다. 만세루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으로 된 건물이다. 흥주사 입구에 축대를 쌓아 올리고, 그 위에 세운 누각으로 1층 부분은 축대로 채워져 있다. 이 건물의 공포를 살펴보면 기둥마다 서까래 밑의 출목과 주두 밑을 가로지르는 창방 사이에 제공이 설치된 익공양식(翼工樣式)이다. 제공은 주두 바로 및 기둥에서 시작하여 출목을 모두 감싸고 있고 쇠서가 주위의 운공에 비하여 작고 아래로 향한 형상이다. 기둥 사이에는 창방과 도리 사이에 화반을 놓았고 건물 내부에는 보위에 화반형의 대공을 설치한 것이 특이하다. 만세루는 1990년 9월 27일 충청남도 지정문화재 제133호로 지정되었다.

대웅전에서 바라 본 만세루
▲ 대웅전에서 바라 본 만세루

만세루를 지나 대웅전 앞에 다다르면 석탑이 보인다. 화려한 대웅전의 색감에 대비되는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단아하게 자리 잡은 삼층석탑은, 신묘한 모습으로 나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었다. 탑을 받쳐주는 기단은 2층을 이루고 있는데, 아래층 기단의 일부가 땅에 묻혀 온전한 형태를 알 수 없다. 각 기단의 맨 윗돌은 아래위 모서리를 깎아내어 무딘 감을 주고 있으며, 위층 기단의 네 모서리와 각 면의 가운데 부분에는 기둥모양을 본떠 조각해 놓았다. 탑신부까지 3층인데 무언가 부족한 듯 어색해 보였다. 1층 몸돌에는 각 면에 네모난 윤곽이 조각되어 있는데, 그 안에 또 다른 무늬를 두었을 것으로 보이나 뚜렷하지는 않다. 심하게 닳아 있는 지붕돌은 1, 2층 모두 밑면에 3단의 받침을 두었으며, 네 귀퉁이에서 살짝 위로 들려있다. 3층에는 후대에 올린 듯한 독특한 모습의 몸돌과 지붕돌이 보충되어 있다. 탑을 세운 시기는 절의 창건 시기와 비슷한 고려시대로 보인다. 일부 파손된 부분을 복원해 놓았으나 조화를 이루지 못해 어색한 모습이다. 전체가 약 3m 정도 높이의 화강석으로 조각된 이 석탑은 1973년 12월 24일 충청남도 지정 문화재 제28호로 지정되어 지금은 태안군에서 관리하고 있는 귀중한 문화재이다.

대웅전 앞 삼층석탑
▲ 대웅전 앞 삼층석탑

대웅전 옆에는 '감로수(甘露水)'라는 약수가 있다. 깨끗하고 맛이 좋다 하니 옆에 비치된 바가지를 들어서 한 모금 마셔본다. 대웅전에 앉아있는 부처님께 보시하고 싶은 맛이다. 땅 속에 돌과 흙과 나무의 뿌리들이 자신들의 모든 것을 부처를 위해서 내어놓은 생명수였다. 나는 한 바가지를 들이켜고 내 안에 있는 부처에게 보시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코로나19는 몸은 떨어지게 할 수 있어도 마음만은 어찌할 수 없는 모양이다. 그 마음으로 나는 혜안을 갖추고 감로수 바로 위에 자리 잡은 삼성각을 바라본다.

대웅전 옆 감로수
▲ 대웅전 옆 감로수

삼성각에는 단군의 영정이 모셔져 있는 곳이다. 흥주사 뒤편 삼성각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평화롭다. 초록과 동색을 이루는 산하는 푸르고 그 초록의 물결들이 굽이치는 골짜기마다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들은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이토록 평화로운 모습을 보고 있는 단군께서는 마음이 흡족하실 것이다. 삼성각 안에 있는 단군의 영정에서 그런 느낌이 가득했다. 하지만 이렇게 평화로운 모습 속에서 꿈틀거리는 생로병사는 오로지 현재의 시간을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의 몫이다.

삼성각 내부의 단군영정
▲ 삼성각 내부의 단군영정

흥주사 대웅전의 끝자락에 매달려있는 풍경소리가 바람을 타고 날아간다. 풍경소리는 언어가 갖는 변명성을 부정하고, 억지스럽게 설명하려는 언어의 탈을 벗고 있다. 한낮 쇠붙이에 불과한 풍경은 바람이 전하는 소리로 자연과 소통하고 있었다. 바람을 맞이하는 풍경의 인사말은 작은 기쁨이다.

대웅전과 감로정의 조화로운 색상이 아름답다
▲ 대웅전과 감로정의 조화로운 색상이 아름답다

가녀리고 청아한 풍경소리에 5월의 햇살이 파고든다. 그 가녀린 풍경소리는 햇살에 녹아들고 쇠붙이의 풍경에서 자연의 풍경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헐거운 흙속에서 백화산의 향기가 새어 나온다. 그 향기 속에는 과거와 현재에 존재하는 부처가 있었다. 이러한 자연의 냄새는 폐 속으로 스미지 않고 마음속으로 스며드는 것이다. 노곤한 육체를 따라온 나의 마음은 신선한 백화산을 들이켜고 있었다. 천을봉이 품고 있는 흙의 노래는 산사에 울려퍼지는 고요한 불경소리와 같은 고요함이 담겨있다. 흙 위에 매달려 있는 형형색색의 점등이 흙의 노래에 춤을 추는 모습은, 인간들이 음악의 리듬에 맞추어 춤을 추는 모습과 다르다. 인간들의 춤은 방정맞고, 점등들의 춤은 지루하다.

대웅전에서 바라 본 삼성각
▲ 대웅전에서 바라 본 삼성각

흥주사 앞 마을의 밭에는 초봄의 난만한 들뜸을 이겨낸 청보리가 살랑거린다. 청보리를 키우는 생명의 시간도 함께 살랑거리면서 흙의 노래에 화답한다. 겨울을 보낸 흙은 보리가 싹을 틔울 수 있도록 자신의 공간을 양보한다. 공간으로 헐거워진 흙은 보리가 싹을 밀고 올라오면 한껏 부풀어 오르고, 보리는 흙의 공간에 기대면서 땅 위로 자라난다. 보리싹들의 출현에 한껏 부풀어 오른 흙은 초봄에 농부들이 눌러놓는다. 이때 청보리 뿌리가 흙을 부둥켜안고 흙과 하나가 된다. 이렇게 강고한 시간의 틈새를 비집고 올라온 청보리는 지금 자신의 알곡을 살찌우면서 아름다운 5월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석가탄신일을 앞둔 점등이 화려하다
▲ 석가탄신일을 앞둔 점등이 화려하다

이런 청보리는 흥주사가 갖는 역사의 비논리성에 친화되지 않는다. 매 년마다 반복되는 청보리의 삶은 시간의 찌꺼기가 묻지 않은 청순하고 밝은 것이다. 거기에는 생로병사의 음영이 드리워져 있지 않고 선명한 리듬이 있다. 사람들은 보리밭 사이로 걸어가지만 보리들은 자신이 태어난 곳에서 꼼짝없이 스러지고, 사람들이 맛있게 먹는 밥이 되어준다.

흥주사 앞 마을의 청보리 밭 뒤로 팔봉산이 보인다
▲ 흥주사 앞 마을의 청보리 밭 뒤로 팔봉산이 보인다

보리와의 간결한 인연은 보리밥을 먹으면서 내 안에서 다시 살아나고, 보리의 흙은 내 몸속에서 영양분이 되어준다. 보리밥을 먹고 살아가는 인간들은 생로병사의 끝자락에서 흙으로 되돌아가고, 인간의 흙은 보리싹을 품고 보리싹에게 영양분으로 되갚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과 동물과 식물과 흙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들은 자연이라는 하나의 집합체에서 유기적인 관계임을 일깨우고 있다.

자연 앞에 공손한 인간의 모습은 아름답다
▲ 자연 앞에 공손한 인간의 모습은 아름답다

자연을 사랑하는 것은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 인간들이 자연을 보호하면 자연은 인간들을 보호하고 건강을 선물해준다. 자식을 사랑하고 후손들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자연을 사랑하고 보호하는 방법을 함께 실천해보는 것은 어떨까? 나는 오늘 흥주사에서, 고려시대 석공의 손길 속에 담긴 예술 혼을 잃어버린 삼층석탑의 낯선 모습과, 천년을 지켜온 은행나무의 시간 위에 만들어진 공존의 무대 위에서 그들만의 독백에 유일한 관객이 되어본다.

수령이 400년 넘은 흥주사 느티나무의 웅장한 모습
▲ 수령이 400년 넘은 흥주사 느티나무의 웅장한 모습

충남 화이팅!! 태안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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