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둔산 마천대 동쪽 능선 낙조대 밑에 고요한 자리에 둥지를 트고 들어앉아 속세를 멀리 내려다 보고 있는 절, 신라 신문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하는데, 처음 이 절터를 본 원효대사께서 주변 경관이 너무나 빼어나 기쁜 마음에 '세세생생 도인이 끊어지지 아니하니라' 예언한 뒤 그 행복한 마음을 감당하지 못해 3일 동안 춤을 추었다는 절, 또 만해 한용운 선생이 '여기를 가 보지 않고는 천하의 명승지를 말하지 말라'고 했다는 곳, 대둔산 그 터에 금산 태고사가 자리잡고 있다.
속리산 하면 법주사, 계룡산 하면 갑사이듯 대둔산 하면 태고사다. 대둔산은 기암괴봉들이 많고 그 바위 봉우리들이 수려하며 깨끗하다. 크지 않으나, 장한 맛도 있고 아기자기한 맛도 있다. 한쪽은 숲이 울창하며 계곡도 아름답다. 가을에 단풍이 기암괴봉과 어우러질 때는 황홀하기까지 하다.
눈 내린 설 연휴 직전, 태고사를 만나러 산행을 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인 태고사는 신라시대 원효가 창건하였고, 고려 말 보우가 중창하였으며, 조선 중기에 진묵이 다시 중창했다고 전해진다. 송시열이 학문을 연마한 곳으로도 유명하며, 6.25전쟁 때 모두 불에 타는 비운을 겪었지만 다시 주지 김도천이 30년 동안 이 절에 머무르면서 대웅전 무량수전 요사채 등을 중건했다.
현재는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7호 대웅전을 비롯해 극락보전 관음전 지장전 산신각 범종각 요사채 등이 있다.
태고사에 오르기 위해 올려다 보니 저만치 하늘과 맞닿은 곳에 절이 보일 듯 말 듯 속세에 찌든 중생을 내려다보며 얼른 올라와 마음을 씻으라고 손짓하는 것 같다.
눈 내린 산길, 타박타박 걸어 오르며 도량을 향해 간다.
저기 사찰에 생필품을 전하기 위해 짐을 가득 실은 트럭이 오른다. 워낙 가파른 산길이라 폭설이 심하게 내리면 그마저도 끊길 듯하다.
오르고 또 오르면 결국 ‘거기’에 다다를수 있을 터, 수북하게 쌓인 눈과 나뭇가지 사이 저만치에 태고사가 보인다.
우뚝 솟은 저 누각은? 태고사 범종각이다. 정말 풍광이 빼어나다. 푸른 하늘과 맞닿아 온 세상을 굽어보며 지켜주는 폼새가 예사롭지 않다.
태고사에 올라보니 누각의 처마 사이로 대웅전이 보인다.
큰스님이 불경을 외며 기도하는 대웅전 안, 중앙에 모셔진 불상이 자애로운 모습으로 맞아준다.
대웅전은 1984년에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7호로 지정되었다.
각종 불서(佛書)가 탁자 위에 놓여 있다.
오래전 입적한 태고사 정안스님의 만일기도 회향식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 남겨 놓았다.
햇살이 따사롭게 내리쬐는 넓은 마당에 남쪽을 향해 자리잡은 관음전이 두 팔을 벌려 중생을 맞는 듯하다.
부처님의 표정도 자애롭다.
극락보전과 불상이 있고 안에는 큰 스님들의 생전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 두었다.
지장전의 모습인데, 지장전은 명부전 또는 시왕전이라고도 일컫는다. 염라대왕등 10왕을 모신 전각으로 주존은 지장보살을 모신다. 이 세상이 아닌 어두운 세계인 명부 세계의 왕인 염라대왕을 모신 곳이라 하여 명부전이라 한다.
독특한 화풍의 탱화도 이채롭다.
처마에 달린 풍경이 잠시 마음을 가다듬게 해 준다. 풍경의 방울에는 고기 모양을 매달아두는 것이 상례로 되어 있다. 즉 고기가 잘 때도 눈을 감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수행자는 잠을 줄이고 언제나 깨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햇빛에 녹아 물방울을 떨어트리고 있는 태고사 처마의 고드름이 다가오는 봄소식을 재촉하는 듯하다.
이제 하산길, 다시 한 번 원효대사가 사흘을 둘러보고도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며 춤추며 기쁨을 나타내었다는 곳을 뒤로한 채 발걸음을 옮긴다. 대둔산은 정녕 아름다운 산이고, 태고사는 더욱 포근한 모습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