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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릴레이 추천으로 다녀온 박물관 나들이

국립공주박물관 2020년도 특별전 '백제금동신발, 1000리를 가다'에 다녀오다

2020.08.11(화) 11:11:50 | 엥선생 깡언니 (이메일주소:jhp1969@naver.com
               	jhp1969@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지상변압기 위에 놓여 있던 낡은 작업화
▲ 지상변압기 위에 놓여 있던 낡은 작업화

누가 잃어버린 걸까? 꽤나 낡아 보이는데, 버린 건가? 굳이 사람들 눈에 띄기 쉬운 데다 왜 올려 뒀지? 무심히 올려다본 지상변압기 위에는 많은 물음을 주는 낡은 신발 한 켤레가 올라앉아 있었다. 물음에 대한 답은 하나도 낼 수 없었지만, 작업화로 보이는 신발만큼이나 주인의 삶 또한 사연이 많겠구나 짐작이 갔다. 
 
레전드 농구 선수의 이름을 건 한정판 운동화가 출시된 적이 있다. 얼마 후, 이 고가의 운동화를 사기 위해 강도 짓을 벌인 10대들에 의해 그 농구 선수의 아버지가 피살된 비극적 사건이 발생했다. 또, 모 국가 원수가 부정부패로 권좌에서 쫓겨날 때 영부인이 소유한 고가의 구두 켤레 수가 오랫동안 구설에 오른 일도 있다. 해외의 이 두 가지 사례를 통해 신발은 개인의 사회적 지위는 물론이고 생활 수준, 성격, 습관 등을 알려주는 척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릴레이하듯 지인 몇몇이 7월 1일(수)부터 국립공주박물관에서 2020년도 특별전이 열리니 꼭 다녀오라는 당부를 건네왔다. 가본 지도 오래됐고, '백제금동신발, 1000리를 가다'라는 전시 주제가 너무 매력적이라 짬을 내기로 했다. 고대에 제작된 금동신발을 통해 어떤 수수께끼의 답을 얻을 수 있을지 출발 전부터 기대가 컸다.
 
릴레이 추천으로 다녀온 박물관 나들이 1
 
릴레이 추천으로 다녀온 박물관 나들이 2
 
발열 체크와 방문자 명부를 작성한 후 곧장 특별전시실로 향했다. 전시실 앞에는 학예사에게 백제금동신발에 대해 궁금점을 남기기 위해 질문지를 작성하는 관람객들이 보였다. 아는 게 없으니 질문하고 싶어도 질문을 못 하는지라 서둘러 전시장 안으로 들어갔다.
 
국립공주박물관에서는7월 1일부터 2020년도 특별전 '백제금동신발, 1000리를 가다'가 열리고 있다
▲국립공주박물관에서는 7월 1일부터 8월 23일까지 2020년도 특별전 '백제금동신발, 1000리를 가다'가 열리고 있다
  
짚신(백제)
▲짚신 재현품

전시된 짚신은 2001년 부여 궁남지에서 출토된 짚신을 재현한 것이다. 늪지에서 자라는 부들로 짚신을 만드는 것은 백제 짚신의 특징이라고 한다. 깔끔하고 정교하게 만들어져 전문 장인에 의해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나무신
▲2000년 부여 능산리 수로에서 발견된 나무신의 재현품, 하나의 나무를 파서 바닥과 굽을 만든 이 나막신은 앞쪽에 난 구멍이 오른쪽으로 치우쳐 있어 왼쪽 발에 신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백제금동신발을 살피기에 앞서 자연환경에서 얻을 수 있는 다양한 재료로 만든 짚신과 나무신 등을 관람했다. 소싯적 여름이면 굽 높고 끈이 가느다란 샌들을 신고 다닌 기억이 떠올랐다. 정확히 말하자면, 신고 다닌 게 아니라 버겁게 모시고 다녔었다. 옛사람들의 사정과 달리 멋에 살고 멋에 죽던 청춘이었으니까 그 불편을 감수할 수 있었던 게다. 
 
백제금동신발 출토 양상을 지도로 확인하고, 3개의 주제로 나뉜 전시장을 본격적으로 관람해 보았다.

금동신발 구조
▲금동신발 구조
 
무덤에서 발견되는 백제금동신발은 지나치게 큰 크기와 약한 구조로 보아 일상생활에서는 신을 수 없었던 것으로 여겨지며, 백제 중앙세력이 자신의 지배력을 확대하기 위해 지방 세력에게 내려준 위세품((威勢品) 으로 보고 있다. 사후 영혼을 위한 무덤 껴묻거리로 시신의 발에 신기거나 주변에 놓아두었다고 한다.
 
늦어도 5세기 초부터 만들기 시작한 금동신발은 6세기 초 무령왕릉 출토 금동신발을 마지막으로 더는 확인되지 않는다고 한다. 구조는 좌측판, 우측판, 바닥판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좌측판과 우측판은 발등과 뒤꿈치에서 못으로 고정하여 결합했다고 한다. 바닥판은 좌·우측판을 구부린 뒤 금동실이나 못으로 결합하거나 구부린 측판 사이에 끼워 넣기도 했다고 한다. 

1부: 백제금동신발, 금강에 이르다

마한 소국의 하나였던 백제는 한강 유역을 중심으로 성장했고, 백제금동신발은 백제가 한성에 도읍한 시기에 지방에 내려주기 위한 위세품(威勢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 이 시기에 제작된 금동신발은 강원도 원주 부론면 법천리, 충청남도 공주 의당면 수촌리 1호분· 8호분, 경기도 화성 요리, 세종시 나성동 등에서 출토되었으며, 이 지역들은 백제와 정치적으로 밀접한 관계가 있었음을 알리고 있다고 한다.
 
공주 수촌리 1호분 출토 금동신발
▲공주 수촌리 1호분 출토 금동신발
 
공주 수촌리 1호분 덧널무덤에서 2003년 출토된 금동신발은 무덤 주인의 발 뼈 일부가 함께 발견되어 발에 신겨진 채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바닥판에는 10개의 못(스파이크)을 부착했다고 한다.
 
고흥 길두리 출토 금동신발
▲고흥 길두리 출토 금동신발
 
위 사진의 금동신발은 고흥 길두리 고분의 구덩식돌덧널무덤에서 2006년 발굴되었다고 한다. 무덤 주인의 발치 쪽에서 출토된 이 금동신발의 주인 역시 신발이 신겨진 채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바닥판에는 11개의 못(스파이크)이 부착되어 있었다고 한다.

2부: 백제금동신발, 영산강에 이르다

백제는 금강을 넘어 영산강 유역으로 세를 확대해 나갔는데, 이 시기에 만들어진 금동신발은 충청남도 공주 수촌리 3호분· 4호분, 서산 부장리 등과 같은 금강 이북 지역과 전라북도 익산 입점리, 전라남도 나주 신촌리, 나주 정촌 등에서도 출토되었다고 한다. 특히 익산과 나주 신촌리 등에서 출토된 금동신발은 이전 시기와 달리 왼쪽과 오른쪽을 구별할 수 있다고 한다.
 
공주 수촌리 3호분 출토 금동신발
▲공주 수촌리 3호분 출토 금동신발
 
2003년, 공주 수촌리 3호분 앞트기식돌넛무덤에서 출토된 금동신발은 1호분에서 발견된 그것과 마찬가지로 무덤 주인의 발뼈 일부가 함께 발견되어 발에 신겨진 채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단다.
 
3부: 백제금동신발, 무령왕릉에서 꽃피다

6세기 초, 무령왕릉에서 왕과 왕비의 금동신발이 출토된 후에 더는 백제금동신발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이는 백제가 중앙집권화되면서 위세품을 내려주어 지방을 지배하는 방식의 실효성이 사라졌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릴레이 추천으로 다녀온 박물관 나들이 3
 
공주 무령왕릉 출토 금동신발 (위:왕, 아래: 왕비)
▲공주 무령왕릉 출토 금동신발(위 왕, 아래 왕비)
 
벽돌무덤인 무령왕릉에서 발굴된 왕과 왕비의 금동신발은 발받침 부근에서 출토되었다. 왕의 금동신발 안쪽에 은판을, 바깥쪽에는 맞새김한 금동판을 덧댄 반면 왕비의 금동신발은 두 장의 금동판을 겹쳐 만들었다고 한다. 또한 왕의 금동신발 바닥판에는 9개의 못(스파이크)을 부착하였고, 왕비의 금동신발 바닥판에는 10개의 못을 부착했다고 한다.
 
못신
▲못신
 
고구려 집안 통구12호의 '적장참수도'와 고구려 삼실총 제3실 '무사도'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못이 부착된 탈착식 철제 못신도 전시되어 있었다. 주거지 내부에서 발견됐다는데, 백제의 금동신발과 달리 사람의 몸무게를 견디기에 충분한 강도의 철제 못신은 실생활에서도 사용됐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아이스 워킹
▲아이스 워킹
 
산간 지방에서 눈 위를 이동할 때 보조 수단으로 쓰던 설피나 오늘날의 아이젠, 아이스워킹을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즐겨보는 TV프로그램을 보다 보니 세상에서 가장 비싼 신발은 190억 원이 넘는다고 한다. 내 발에 딱 맞는 신발을 제작할 수 있었지만, 피폭될 확률이 35%나 되어 1970년대에 사라진 '신발 장착 형광투시경'이라는 게 있었단다. 190억짜리 신발은 가격도 가격이지만, 심신이 불편하여 도저히 못 신을 것 같다. 나이가 들면서 첫째도 편안, 둘째도 편안을 우선시해 신발을 사다 보니 한 번 맘에 들면 같은 걸 여러 켤레 주문해서 신고 있다. '신발 장착 형광투시경'을 이용한 신발 제작은 방사성 물질을 막아주는 차폐물 관리만 잘할 수 있다면 쇼핑 베짱이(?)인 나한테 '딱'일 것 같다.

국립공주박물관의 2020년도 특집전 '백제금동신발, 1000리를 가다'에 다녀오고 나니, 노래 '아리랑'에 나오는 '아리랑고개를 넘다 십 리도 못 가서 발병날' 그 사람은 어떤 신을 신었을까 별게 다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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