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통합검색 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화면컨트롤메뉴
인쇄하기

문화

알젖는 소리

이명재의충청말 이야기 (36)

2020.03.26(목) 15:08:02 | 도정신문 (이메일주소:ktx@korea.kr
               	ktx@korea.kr)

알젖는 소리 1


‘꼬꼬댁 꼬꼬, 꼬꼬댁 꼬꼬’
서울 닭의 ‘알겯는 소리’
충청도 암탉의 ‘알젖는 소리’
초가집 옆 달기장엔 암탉 울음

 
출근길 위로 암탉소리 휘날린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알젖는 소리. 내 사무실 앞쪽에는 예산천이 흐른다. 개천을 덮어 만든 하상주차장, 차를 세우고 돌아서는 길옆으로 작은 집들이 늘어섰다. 주변에는 빌딩들이 즐비한데 역사의 발자취처럼 늙은 기와집과 함석집이 손을 맞잡고 있다. 차도와 인도에 이어진 장미울타리, 그 안쪽 철장 안에 닭 몇 마리 오종종 모여 산다.

1970년대, 어린 날의 초가집 옆엔 달기장이 있었다. 붉은 갈기를 세운 수탉은 겨우내 서넛의 암탉을 거느렸다. 암탉들은 아침마다 알을 낳았다. 해가 솟아오면 모시를 흠뻑 먹은 암탉들은 짚둥지에 몸을 사렸다. 알을 낳고는 한참 동안 알을 품었다. 그리곤 내 아이가 태어났노라 날개를 쳤다. 몸을 일으켜 꼬꼬댁 꼬꼬 울어댔다.

3월이면 아버지는 짚으로 둥지를 엮어 헛간 위에 걸었다. 그 둥지 위에 동그라미를 세어 넣었다. 늘 열둘이었다. 엄니는 열다섯을 넣자고 하고 아버지는 고개를 저었다. 욕심껏 넣으면 못 쓴다고. 누구네는 스물을 넣었다가 어미닭이 죽었다고.

4월이면 동그라미는 열두 송이 개나리꽃이 되었다. 꽃들은 어미닭을 따라 돌담 곁에 피어나기도 하고 두엄가를 헤집으며 종종거렸다. 빗줄기로 쏟아지는 오후 봄볕에 깜막깜막 졸다간, 문득 5월이 되면 붉은 깃털을 세웠다. 여름 장마가 깃털 위로 흐르고, 붉은 단풍처럼 가을이 밀려오면 어미닭이 되었다. 수컷은 제법 목청을 돋워 새벽을 울고 암컷은 알 낳을 준비로 골골거렸다.

겨울방학이면 알젖는 소리에 깨었다. 암탉들은 오전에 알을 낳았다. 아침 내내 모시를 쪼아대다가 9시가 넘어가면 둥지를 틀었다. 10시 지날 즈음엔 따끈한 동그라미를 낳았다. 그리곤 자신의 생명을 세상에 알렸다. 갓 낳은 알을 품으며 한참을 꾹꾹거리다간 꼬꼬댁 꼬꼬 일어섰다. 그러면 나는 달기장을 향했다.

이젠 세상이 달라졌다. 달기장은 양계장이 되었다. 날갯죽지로 개나리를 품던 자리엔 부화장이 생겼다. 그러는 동안 나는 암탉이 ‘알을 젖는다’는 충청말을 잊었다. 충청도 사람들은 표준어 ‘ㄱ’을 흔히 ‘ㅈ’으로 쓴다. 김치를 짐치라 하고 김밥을 짐밥이라 한다. 서울 사람들이 몸을 기울일 때 충청도 사람들은 몸은 찌울이고, 서울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거릴 때 충청도 사람들은 고개를 짜웃거린다.

오늘 출근길, 나는 오랜만에 충청도 암탉의 외침에 몸을 적셨다. 서울 닭의 ‘알겯는 소리’ 위로 쏟아지는 충청도 암탉의 그리운 소리.
※알젖는 소리의 젖의 ㅈ받침은 ㄷ으로 표기가 맞음.



 

도정신문님의 다른 기사 보기

제4유형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4유형: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댓글 작성 폼

댓글작성

충남넷 카카오톡 네이버

* 충청남도 홈페이지 또는 SNS사이트에 로그인 후 작성이 가능합니다.

불건전 댓글에 대해서 사전통보없이 관리자에 의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