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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신문뉴스

걱정 없이 건강하게 사는 것이 행복이죠

우리의 이웃 - 청양읍 교월리 이복문 씨

2016.11.10(목) 16:25:40 | 관리자 (이메일주소:ladysk@hanmail.net
               	ladysk@hanmail.net)

걱정없이건강하게사는것이행복이죠 1


오늘 만나볼 우리의 이웃은 올해 팔순을 맞이한 이복문(청양읍 교월리) 씨다. 그는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는 것을 직접 보여준 여장부다. 그를 소개한다.
 

농사부터 축산까지 척척 
금강산이 보이는 강원도가 고향인 그는 6·25때 피난 나온 부모를 따라 외가인 청양으로 와 중 2학년까지 다녔고, 서울로 가 제약회사에서 일하며 야학으로 중학교 과정을 마쳤다. 이후 청양으로 와 직조 공장을 직접 운영하기도 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겨우 열아홉이었다.

“어머니께서 생활력이 강하셨는데, 제가 이어 받은 것 같아요. 일찍부터 일을 시작했죠. 그렇게 번 돈으로 청양에 땅을 조금씩 샀고, 이후 어머니는 그곳에 채소를 심고 저는 내려와 양재학원을 다니며 배운 기술로 직조공장을 차려 일을 했습니다. 그러다 21살 때 결혼해 1년 여 일하다 남편 고향인 함양으로 갔어요. 경찰관을 하던 남편이 교육 행정직 공무원이 돼 따라간 것이죠. 그리고 9년 만에 다시 청양으로 와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당시 그의 남편은 함양에서 계속 직장을 다녔으며, 이씨는 청양으로 왔다. 32살 때였다. 이후 부모, 아이들과 함께 살며 축산, 농사, 보험 일까지 1인 다역을 해 냈다. 

“남편이 박봉이었고, 계속 함께 있다가는 아이들을 못 키울 것 같더군요. 그래서 제가 아이들 데리고 청양으로 와 일을 했어요. 병아리부터 키웠어요. 800마리까지 늘렸었고, 소도 20여 마리 키웠죠. 20여년 하다 축산농가가 늘어나 힘들어지면서 접었어요. 이후 벼 고추, 콩 농사만 지었습니다. 부모님께서 많이 도와주셨고, 특히 어머니께서도 고생 많이 하셨어요.”

한동안 시간이 흐른 뒤 그의 남편도 청양으로 와 청양중고와 주산산업고 서무과장 등을 지냈으며, 마지막으로 충남교육원장으로 근무하다 세상을 떠났다.

“애들이 셋인데 결혼하는 모습을 한명도 못보고 갔어요. 그것이 가장 안타깝죠.”
 

예순 넘어 ‘자신 위한 투자’ 시작 
이처럼 바쁘게 달려온 이씨는 예순이 넘어서야 오롯이 자신만을 위한 투자를 시작했다. 2000년부터 서예를, 그리고 2003년부터 문인화를 시작한 것이다.

“아이들도 모두 출가했고 일도 거의 접은 상태여서 시작했죠. 외할아버지께서 한약방을 하셔서 명심보감을 외우곤 했었어요. 그렇다보니 한문 읽는 데는 문제가 없었고, 그래서 서예에 도전한 것입니다.”

이후 그는 청양도서관, 청양읍사무소 주민자치센터, 청양군노인종합복지관에서 서예와 문인화를 배우며 습작을 계속했다. 그 결과 전일본수묵화수작전, 백제서화전 등 다수의 공모전에서 수상한데 이어 지난해 백제서화전 초대작가, 올해에 대한민국면암서화대전 초대작가로 선정되는 등 지역 문화예술발전에 큰 보탬이 되고 있다.
 

“도서관, 읍사무소, 노인복지관 등 배울 수 있는 곳이 많아 좋습니다. 강사님들도 열심히 가르쳐주시고요. 그래서 저도 문인화, 서예, 컴퓨터, 영어·기타, 그림도 하고 있습니다. 특히 노인복지관이 있어서 참 좋은 것 같아요.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고, 직원들도 친절하고요.”

그는 또 교월리 부녀회장도 수년간 맡았었고 현재는 노인회장직도 맡고 있다. 특히 2002년에는 고인이 된 친정아버지의 뜻을 기리기 위해 교월2리 마을회관 건립에 사용할 땅 330제곱미터를 희사하는 등 마을사랑에도 적극적이었다. 

개인전 꿈꾸며 앞으로도 열심히
그는 올해 개인전을 열 계획이었다. 팔순을 맞아 그동안 틈틈이 완성한 작품들을 선보이려 했던 것. 하지만 미뤘다. 친정어머니 가순월(100) 씨가 병원에 입원해 있기 때문이다.

“치매로 고생하시다 3년 전 요양병원에 입원하셨어요. 저와 사셨는데 제가 어깨 수술을 하는 바람에 병원에 모셨죠. 이런 상황에 개인전을 여는 것이 편치 않더군요. 그래서 미뤘어요. 열심히 준비해 꼭 한번은 해 보고 싶어요. 앞으로 건강 챙기면서, 작품활동도 열심히 하고 또 노인회장 임기 동안 잘 마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제 할 일인 것 같아요.” 
 

자녀들을 잘 키우기 위해 남편과 떨어져 사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던 그. 그 덕분일까 상윤(59·건양대 병원경영학과 교수)·은주(57·향토발효음식연구소 원장)·상춘(55·영어교사) 씨 등 2남 1녀 모두 제 역할을 잘 해주고 있다. 지극한 효자효녀이기도 하다. 

“못 배운 한 아이들이 풀어줬어요. 저와 할머니에게도 잘하죠. 걱정 없이 건강하게 사는 것이 행복인 것 같아요. 더 큰 바람은 없어요.”
 

평생 바쁘게 살아온 그. 요즘도 취미활동은 물론 집 주변 텃밭에 다양한 채소 등 직접 농사를 짓는단다. 가족들의 먹을거리와 음식에 관심이 많은 딸을 위해, 또 이웃에 나누기 위해서다. 그의 부지런함은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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