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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논산에 잠든 중종의 증손자 익성군

2016.04.28(목) 21:12:24 | 맛난음식 (이메일주소:linecplan@naver.com
               	linecplan@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익성군이라고 하면 상당히 낯선 인물인데요.
저도 논산으로 볼일이 있어서 갔다가 길을 잃어버려서 가본 곳입니다. 익성군은 중종의 아홉째 아들인 덕흥 대원군의 장자 하원군 정의 둘째 아들이라고 하는데요. 그의 신도비가 논산에 있었습니다. 익성군이라고 봉해진 것은 1597년 (선조 30년)이였습니다. 

 
익성군 신도비
▲ 익성군 신도비
 
익성군 신도비의 비문은 조익이 글을 짓고 오준이 썼다고 합니다. 익성군은 광해군 4년 (1612) 이이첨의 무고로 거제도에 유배되었다가 그곳에서 생을 마친 다음 인조 21년 (1643) 이곳으로 이장되었다고 합니다. 

익성군의 신도비 및 무석
▲ 익성군의 신도비 및 무석

죽어서 이곳으로 온것을 보면 왕실의 삶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닌것 같습니다. 신도비는 조선시대 2품 이상 관직을 지낸 사람의 무덤 앞이나 들어가는 입구에 세우는 비라고 합니다. 


신도비의 상당부
▲ 신도비의 상단부

비의 덮개돌 앞면에는 반용이 조각되어 있고 옆과 뒷면에는 구름무늬가 돋을 새김으로 되어 있습니다.
 
신도비의 받침
▲ 신도비의 받침

비의 받침은 네모진 모양으로 되어 있는데요. 이는 비 몸을 거북받침 위에 세우는 보통의 신도비와 다른 형태입니다. 

익성군 가족의 묘
▲ 익성군 가족의 묘

익성군 신도비를 보았으니 익성군 묘를 보러 올라가 봅니다. 익성군 묘앞에는 무인석인 문인석도 있습니다. 무인석은 전체가 하나의 돌로 조각된 것으로 투구를 쓰고 갑옷을 입고 있더군요. 양손을 가운데로 모아 칼집을 쥐고 있습니다. 

익성군 묘의 문무석
▲ 익성군 묘의 문무석

익성군 묘에 있는 조각들은 조선 중기의 조각 수준을 가늠케 해주는 중요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익성군 아들들의 묘
▲ 익성군 아들들의 묘

익성군 묘역 우측에는 3기의 묘가 있는데요. 좌측에서 부터 진천군 묘(익성군의 둘째), 진릉군 묘(익성군의 셋째), 진평부정 묘(익성군의 넷째)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익성군 묘 정면
▲ 익성군 묘 정면


익성군을 유배까지 보낸 이이첨은 광해군 때 복권된 인물로 유경영을 비롯한 소북파를 역도로 몰아 처형까지 했던 사람으로 정권의 1인자로 국사를 좌지우지했었죠. 항상 조정의 논의를 주도했으며 벼슬자리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적지않은 뇌물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익성군 신도비 위치 : 논산시 은진면 용산리 산 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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