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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생육신' 김시습이 잠든 부여 무량사

2010.01.10(일) | 잎싹 (이메일주소:kji206@naver.com
               	kji206@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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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량사 들어가는 초입 무량마을

무량사는 부여에서 가장 큰 사찰로 충남 부여군 외산면 만수리 만수산남쪽 기슭에 자리잡은 유서깊은 산사이다. 만수산은 여덟가닥의 산줄기가 연꽃모양으로 퍼져 있는 아름다운 산이다. 최근 눈과 한파로 무척이나 추운 날씨였지만 추위를 무릎쓰고 찾아간 산사, 무량사.

 무량사 주차장에 주차한후 잠시 걸어가니 상가에서 묵을 내어놓고 팔고 있었다.  추운날씨인데도 미각이 자극되어 맛을 보았더니 표고버섯을 이용하여 만든 묵으로 표고의 향이 그윽하며 향긋하였다.  내려올때 살려고 하다가 그 맛에 얼른 사서 차에 넣어 두고 무량사 매표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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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사의 무량은 셀수없다는 말의 한 표현으로서 목숨을 셀수 없고 지혜를 셀수없는 것이 극락이니 극락점토를 지향하는곳, 어두운곳을 한없이 밝다, 또는 한량없다. 여한이 없다는 뜻이다.

무량사의 무량 뜻을 새기며 일주문을 바라보니 기둥이 유난히 굵고, 만수산 무량사라는 부드러운 글씨의 편액을 살펴보니 재미있게도 한반도지형의 두인이 이색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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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반도 두인이 인상적인 일주문 편액

한반도 지형안에는 희미하게 일체유심조( 一切維心造 )라 적혀있다.   차우 김찬균의 글씨이다. 일체유심조의 뜻처럼 세상만사가 다 마음에 있는것이니 눈물나는 것들은 문앞에 다 쏟아놓고 편안한 마음으로 들어서라는 뜻을 새기며 들어선 일주문을 뒤돌아보니 광명문이라 적혀있다. 그 뜻 역시 문을 들어서는 어둠에서 밝고 환한 희망을 상징하는 내용이다.

아마도 무량사에 들어서는 순간 모든 번뇌는 다 잊어버리고 희망을 안고 가라는 뜻인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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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락전,석탑, 석등

무량사는 신라 문성왕때 범일국사가 창건하여 신라말 무염선사가 중수하고 고려 고종때 중창하였다. 임진왜란때 소실된 것을 조선 인조때 대대적으로 중창하였고 1872년에 원열이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무량사는 국보급 보물5점과 충남문화재8점을 보유하고 있으며 평생 흐르는 물처럼 살았던 생육신의 매월당 김시습이 입적하여 생을 내려 놓은 곳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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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채색의 돌탑무더기

오붓한 곡선 길을 걸어 다리를 건너니 좌측 길목으로 돌탑무더기가 보였다. 작은 정성들이 모여 잔설속에서 아를다운 풍경을 만들어 낸다. 유연한 길을 들어서니 팔작지붕의 천왕문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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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량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 극락전 전경

천왕문을 후레임으로 무량사 석탑과 석등, 무량사 극락전을 담은 사진을 잊을수가 없어 나역시 그렇게 담아본다. 내가 무량사에 꼭 오고싶었던 이유중의 하나이다.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듯한 풍경은 무량사에 반하게 만든 최고의 아름다운 장면이다.

극락전과 석탑, 석등은 나란히 열을 지어 서있는듯 일직선상에 놓여 휘어져 굽은 반송과 어우러져 흐트림 한점없이 반듯하다. 숨이 멎을듯한 고요한 풍경은 역사의 숨결이 들리는듯, 단정한 아름다움을 안고 있다. 발걸음을 아껴 걸으며 자신만의 속도로 늙어가는 극락전을  올려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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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사 석등과 석탑, 극락전.

무량사 극락전(보물 제356호)는 우리나라에서는 그리 흔치않는 2층 불전으로 무량사의 중심건물이다. 외관상으로 2층이지만 내부에서는 아래 위층이 구부되지 않고 하나로 트여있다. 아미타여래삼존상을 모시고 있는 이 불전은 조선 중기의 양식적 특징을 잘 나타낸 불교 건축으로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우수한 건물이다. 아래층은 앞에서 보면 5칸 옆에서는 4칸이며 위층은 정면이 3칸, 옆면이 2칸으로 되어있다. 2층 불전이라 마곡사 대웅보전의 느낌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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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락전(보물356호) 와 배롱나무

올려다 보는 극락전의 모습은 정말 웅장하며 아름다운 건물이다. 극락전 제일의 볼거리는 처마 밑 공포, 소의 혀모양으로 생겼다 해서 ‘쇠서’라고 하는 공포 끝부분은 비록 채색은 빛바랜 모습이지만 수많은 꽃잎이 피어 오르는 초화형이라 화려한 자취만큼은 그대로 간직하고 곱게 늙어 가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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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 솟은 창살과 중앙의 꽃창살 역시 은근한 멋이 흐르는 듯 오밀 조밀한 조각이 예사롭지가 않다. 화려한 꽃창살과는 또다른 멋스러움은 조용한 산사의 분위기를 읽는것 같다.

사찰에서 많이 만나는 배롱나무가 극락전 앞에서 허리 굽은 모습으로 세월의 흐름 만큼 잔가지를 보여주며 여행객의 눈길을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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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각석등(보물 제233호)

팔각석등(보물 제233호)은 선과 비례가 아름다운 석등이다.

상대석과 하대석에 연꽃이 조각되어 있고 팔각 화사석을 갖추고 있으며 우리나라 전형적인 석등이다.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을 중심으로 아래에는 네모난 바닥돌 위로 3단의 받침돌을 쌓고, 위로는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은 모습이다. 미끈하고 날렵하여 비례가 아름다운 석등이다. 만들어진 시기는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 사이인 10세기경으로 추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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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층석탑(보물 제185호)

웅장한 모습의 오층석탑(보물 제185호)은 백제와 통일신라의 석탑 양식을 조화시켜 만든 고려 전기의 탑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널찍한 기단위 7.5m높이로 올려 안정감을 주며 경쾌함을 주는 처마선과 부드러움은 부여 정림사터 탑을 그대로 빼닮았다.

지붕돌 처마밑에는 빗물이 탑 속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절수구를 파놓아 세심한 손길을 알수 있다. 해체공사를 할때 탑신의 1층 몸돌에서 금동제 아미타여래좌상, 지장보살상, 관음보살상의 삼존상이 나왔고, 3층에서는 금동보살상, 5층에서는 사라구가 발견되기도 하였다. 

고요하게 자리 잡은 극락전, 석등, 석탑의 모습만 보고 있어도 시간 가는줄 모를 정도로 아름답다. 그 풍경속에 잠시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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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종각

범종각은 얕게 네모난 기단을 쌓고 그 위에 4개의 초석을 두어 기둥을 세워 창방과 평방을 짜올린 익공식으로 겹처마에 모임지붕을 올렸다.    천정은 서까래를 노출시킨 영등구조이며 중앙에는 불교 의식구인 범종이 매달려 있다.    금방이라도  청아한 종소리가 울려 퍼질듯, 꽂꽂한 편백나무와 어우러져 고운 시간들이 머물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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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간지주(시도유형문화재 제57호)

천왕문 우측에 있는 당간지주(시도유형문화재 제57호)는 두 개의 길다란 돌기둥이 서로 마주보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아무런 장식이 없는 소박하고 단아한 모습으로, 통일신라시대에서 굳어진 제작방식을 따라 고려 초기에 만든 것으로 추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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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를 풍미한 문학가이며 사상가 였던 김시습은 우리나라 최초의 소설인 ‘금오신화’를 남겼으며 15권이 넘는 분량의 한시를 남겼다. 생육신의 한 분으로 21세 때에 수양대군(후의 세조)의 왕위찬탈 소식을 듣고 불교에 귀의하여 말년을 무량사에서 보내다 입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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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월당 김시습 영정(시도문화재64호)

매월당 김시습 선생의 영정(시도유형문화재 제64호)은 비단에 채색하여 그려 놓은 이 그림은 조선 전기 사대부상 중의 하나로, 선생이 살아 있을 때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조선 전기의 초상화는 현재 몇 점 밖에 전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것도 원본을 본 떠 그린 것이거나 덧칠을 한 것이 많은데 이 초상화는 원본 그대로 남아있어 귀중한 작품이다.

무량사를 나와 주차장 지나면 우측으로 다리를 건너면 무량사 부도밭이 따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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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시습 부도(시도문화재 제25호)

매월당 김시습 부도(시도유형문화재 제25호)가 있어 놓칠 수 없는 곳이다. 스님들의 부도가 옹기종기 모여있는데 가장 눈에 띄는 김시습의 부도는 조선시대 중기에 세워졌으며 높이 2.84m이며 하대석에 엎어진 연꽃이 새겨져 있으며 중대석에는 용 두 마리가 서로 얽혀 구름 속에서 여의주를 희롱하고 있으며 상대석 연꽃은 아무 무늬도 없이 단정하다. 조각이 매우 뛰어나고 화려하다

이밖에 무량사에는 지장보살및 시왕상일괄(충남문화재176호),괘불(보물제1265호)등이있다.                        (문화재와 건물에 대한 설명은 안내팜플렛과 무량사 홈피내용을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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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수산, 무량사 만수무량, 산이름과 산사이름이 서로 어우러져 있는 무량사는  세상을 잊고 마음을 품어 올 수 있는 시간을 가질수 있는 산사이다.

겨울내 움추렸던 마음 한구석, 날카롭고 예민했던 신경이 느슨해지는,  그래서 돌아올때는 좀 더 여유있고 넉넉하게 보는 마음이 생기는 시간이 되는것 같다.  역시,  여행은 비움과 채움의 연속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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